김경민(a.k.a.프랑소와)은 1999년 5월 28일… 경기도 남양주 어딘가 1남 1녀 가정에서 태어났노라.. 김경민의 코를 자세히 보면 코의 정면에 무언가 알 수 없는 흉터가 있다.. 이 흉터의 원인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가 말하길.. 내가 태어났을 때 코에 이상한 흉터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 그 누구도.. 이 흉터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 그 당시에 물어보지 못하고.. 나중에 물어봐야지~ 하고.. 엄마는 그대로 잊어버리고.. 퇴원을 했다고 한다.. 평화로운 어느 날.. 신생아인 나를 보다 문득 아..! 코 흉터..!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으니.. 내가 태어났던 병원에 다시 가니 그 병원은 폐업하고 없었다.. 이 이야기는 3주..라는 기간을 거쳐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코의 흉터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김경민네 가족은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왔다. 이 일이 한 달… 정도라는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사당동의 어느 한 집으로 이사를 온 김경민은 무럭무럭 자라 유치원에 들어가야 할 나이가 됐고 유치원은 안 가고 아롱다롱 어린이집에 등원을 했다. 이 어린이집도 망했다. 그때 위치했던 장소의 근황을 알아봤다. 세무사가 된 듯 하다. 김경민이 6살이 되었을 즘에 횡단보도 하나 넘어와 방배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러고 8살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초등학교는 집 앞에 있는 서울이수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정말 무난하고도 평범하고도 여느 초등학생 마냥 즐겁게 떡볶이와 컵라면을 먹어대며 초등학교를 보냈다. 그리고 김경민.. 어느덧 14살.. 중학교에 입학을 할 나이가 되었다. 김경민은 두 개의 중학교에 갈 갈림길에 서있었다. 하나는 집을 기준으로 오른쪽 방향에 위치한 ‘동덕여자중학교’. 또 하나는 집을 기준으로 왼쪽 방향에 위치한 ‘서문여자중학교’였다. 김경민은 후자인 서문여자중학교를 좀 더 선호했으며 진심으로 100일이라는 기간동안 매일 밤 잠에 들기 전 간절히 빌었다. 서문여자중학교에 배정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그 결과…! 김경민은 정말 서문여자중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그 이후 김경민은 정말로 간절히 바라고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신념에 잡히게 된다.

그렇게 김경민은 서문여자중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정말 여중생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중학교를 보냈다. 그 시절 김경민은 엑소라는 남성 아이돌 그룹에 미쳐 살았으며 그중에서도 도경수(a.k.a.D.O.)를 지독하게 사랑했었다… (요즘엔 이 남성에게 빠져산지 오래다.) 한 편.. 김경민은 정말 어린 나이부터 미술을 해왔었다.. 기억상 8살…?그렇게 쭉 미술을 해오던 김경민은 무의식적으로 미술대학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인생을 살아오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 2학년의 생활이 끝나고 겨울방학에 들어갈 무렵 엄마가 너 예술고등학교를 준비하지 않을래?라는 제안을 했으며 미술대학에 가고 싶던 김경민은 바로 승낙을 해버린다!그렇게 김경민은 2학년의 겨울방학 때부터 예고 입시를 시작했으며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예고 입시 준비를 하는 친구들과 동고동락하며 열심히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한편 웃기게도 망언을 했던 김경민..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김경민은 예고는 서울예고가 최고지!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적이 낮았던 중학교 3학년의 김경민은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의 무대미술과에 진학을 하게 된다. 아무튼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어 너무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17살 고등학생이 된 김경민.통학 시간이 무려 왕복 2시간이 된 김경민은 아이고야 곡소리로 내며 등교를 시작했다. 서양화, 동양화, 디자인을 해보며 (과 명칭은 무대미술과였지만 무대미술에 대해 배우진 않았다. 이에 대한 내 뇌피셜은 2개다. 하나는 다른 과들이 다섯 글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맞추려고 또 하나는 아무래도 공연예고이다 보니 이름이라도 맞추기 위해.. 서가 아니었을까) 1학년이 끝날 무렵 전공 선택 길가에 서있었고 결국 나는 디자인을 택했다. 디자인을 택하긴 했지만 디자인 입시는 너무너무 싫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도 아니고 사실 그림 그리는 내내 나랑 진짜 안 맞는다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뭐 근데 어찌하겠냐. 이미 택해버린 길..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고3 대입은 실패를 맞이했다. 그러고 재수를 하게 된다. 재수를 하게 됐지만 의외로 잡힌 분위기를 좋아했던 경민은 규칙적인 생활 패턴에 적응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나에 취해 인생에서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해보는 시기가 되며 수능 공부를 했다. 그리고 이때 다니던 미술 학원에서 유예진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맞다. 지금 같이 새로운 질서에 참여하고 있는 그 아이다.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때 예진이와 나는 적당히 말하는 친구 정도의 사이였고 같이 노는 친구는 아니었다. 어쨌든 수능을 보는 11월이 왔고 김경민은 국어 영역에서 대참사가 일어나 아쉽게 수능을 마무리를 하게 된 상황에 정시 특강을 시작하게 됐고 가군 나군에 탈락하고 다군이었던 한경국립대학교에 합격하게 된다. 웃기게도 앞서 말한 유예진과 나란히 다군에 붙은 웃픈 상황이 벌어진다. 딱히 친구랄 것도 없는 상황에 둘은 입학과 동시에 빠르게 친해지고 만다…

그렇게 19년도에 입학을 하고 20년 21년 22년.. 어느 날 유예진이 김경민에게 “이거 되게 너랑 나 같다” 하고 보낸 짤이 있다. 뭔가 싶었는데 웃겨서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것도 되게 너 같다 하고 소리를 듣고 난 후로는 프랑소와가 더욱 나 같은 정감이 들어 프랑소와에 익숙해지게 된다.. 처음엔 그저 장난으로 시작한 거였지만 이 둘은 프랑소와 깨돌이라는 네임으로 활동을 하게 되고 자연스레 프랑소와 깨돌로 살게 된다. 프랑소 와 깨돌이 아니고 프랑소와 그리고 깨돌이다. 헷갈리면 안된다.

이 모든 건 내가 왜 프랑소와가 됐는지 설명하는 글이 됐다.